[포항여행]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조일통상장정 아픈 역사의 기록
구룡포에 가면 옛날에 일본인들이 살았던 가옥이 남아있는 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방문하실때에는 일본가옥이 많을꺼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하하하;;;
남아있는 일본가옥은 몇 채 없거든요 ㅠㅠ
그래도 일본인가옥거리를 알리는 표지판과
버스정류장까지
일본스러움이 물씬 느껴집니다.
그래도 일본인 가옥거리를 찾으신다면 요 집에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현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고,
일본가옥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구룡포근대역사관
이 건물은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 가옥이다.
해방 후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어 오던 것을 포항시가 매입 수리하여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네 백여 년 전에 모습들이 잘 남아있으면 당시 생활 모습을 다양한 전시 자료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건물은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곳이 바로 구룡포근대역사관은 정면 모습입니다.
하시모토 가옥은 구룡포에서 큰 성공을 이룬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았던 곳이다.
가가와현 오다 어촌에서 구룡포로 이주해 온 하시모토 내외와 3남 4녀의 자녀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선호 운반업으로 시작하여 정어리 가공공장을 설립 경영 했을뿐만 아니라 학교 조합에 관리자까지 맡았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부와 명성에 걸맞게 하시모토 가옥은 크고 화려하게 건축되었다. 하시모토 가옥은 1층에는 하시모토의 집무실이 있어 끊임없이 손님들이 드나들었다.
1층에는 집무실 외에도 딸들의 방 하시모토 부부가 사용하던 방 부엌과 식당이 있었다 2층에 세 방을 후스마로 분리 해 놓았다가 손님들이 왔을 때는 후스마을 떼어낸 후 2층 전체를 넓게 사용했다.
가옥 내부에 사용된 건축자재 특히 가옥 2층의 츠게쇼잉과 도코바시라, 란마 등에서 주인인 하시모토 젠기치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 가져온 재료를 사용하여 장식하였으며 일본 가옥 특유의 절제된 미와 우아함이 돋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외에도 목욕탕과 하시모토가의 아들들이 썼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되고 남아 있지 않다.
안방
집에서 가장 중요한 안방으로 하시모토 가족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어린 시절 하시모토 막내딸이 부모님과 함께 안방을 사용하였다.
조상들을 모시는 부츠단을 두었으며, 붙박이 벽장(오시이레)과 장을 두고 사용했다.
겨울철에는 고다츠를 두고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시모토 딸들의 방
하시모토 가옥의 2층은 주로 손님을 맞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더운 여름철에는 가족들이 2층을 침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방을 하시모토 딸들이 사용하던 방으로 복원하여 당시의 생활 모습과 유물들을 재현해놓았다.
벽에는 오시이레(붙박이 벽장)가 있으며 방과 방, 방과 복도 사이에 나무로 된 창살(란마)을 넣어 통풍과 환기가 잘 되고 빛이 잘 들어오도록 하였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의 나무 창살을 통해 당시 하시모토의 부와 하시모토 가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화장실
하시모토 가족이 살던 당시, 이곳에 부엌과 식당이 있던 곳이다.
복원 당시, 외부에 있어서 철거되버린 화장실을 이곳에 복원하였다.
전통 재래식 화장실을 재현한 것으로, 대변기와 소변기가 나누어져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 표지판 정면으로 이렇게 긴 계단이 존재합니다.
한번쯤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을꺼예요.
저처럼요 ㅎㅎㅎ
하지만 올라서면 구룡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빠밤!ㅎ
높은 계단을 끝까지 오르고 나면 볼 수 있는 구룡포의 전경
일본 가옥거리는 거의 안보이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올라볼만 합니다.
또 계단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구룡상도 있습니다.
사진에 다 담아내지 못했지만,
아홉마리의 용들이 굉장히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예요.
구룡포 지명의 유례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감이 각 마을에 순찰하던 중 사다리를 지날 때 별안간 천둥과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그 비바람을 뚫고 용 열 마리가 생선을 하다가 한 마리가 바다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용이 아홉 마리 만 승천 했다고 하여 그때부터 구룡포라고 불렸다.
각 용마다 여의주를 물고 있던데 소원이라도 한 번 빌어볼껄 그랬나요?ㅎㅎ
* 2018-03-02 실제 방문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